[월간 환경과 조경] "환경도예의 디자인 철학"

[월간 환경과 조경] , 디자인 철학(Design Philosophy & Ethics) 코너 부문 9월호 기고

- 예술은 단순히 보기위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 도예가: 이재삼 (제3도예 대표)

최근 “환경조형”이라는 각종 조각 및 부조벽화 등 환경예술품(environmental art)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도시와 자연공간을 대상으로 거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환경도자(環境陶藝) 도벽 등 건축공간에 환경미술 작품들이 인간 생활환경 속에 놓임으로써 예술적 가치를 더한다고 보여 진다.
환경조형 분야에서 도자예술이 조각과의 접목으로 생겨난 새로운 "도자조각"을 도조(陶彫)라고 하며 여기에 조각의 반입체 부조를 가미한 도벽(陶壁)은 “도자벽화”의 줄말로 건축물의 벽면, 천장, 바닥 등 특정 건축공간에 사용된 점토조형물을 말한다.
기능주의적 근대건축에 흙과 불의 도예를 접목시켜 창의적인 예술성을 현대 건축공예에 응용한 것이다.

예로 궁궐과 한옥에 도예조소(陶藝彫塑)의 부조판을 이용해 흙으로 돌을 대신한 전통 기와나 전돌과 같이 주거공간뿐만 아니라 주거환경인 집의 외곽과 꽃담을 쌓을 때 벽전(壁塼)으로 바탕화면을 구획하여 독립된 부조(浮彫)무늬를 넣어 치장하는데 쓰였다. 오늘날에도 도벽은 환경도자 예술의 분류 중 한 종류라고도 할 수 있는데, 건축 일부분에 착공되기 때문에 건축도자예술(建築陶瓷藝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건축도자를 “환경도예”라는 현대도예의 한 부류로 이끌어 온 동기는 고교시절 부산공예학교에서 도자를 익혀 학부 3년 첫 공모의 실험작들이 주목받으면서였다. 대한산업미술가협회전이나 대한민국공예대전 등 당시 거의 물레질 용기가 도자공예로 치부하던 시절, 목재판에 연리문을 가압성형한 도판(陶版)을 엮어붙이고 나무액자를 둘러친 반입체 부조로 도벽을 출품한 것이다. 첫 실험작이라 도자물이 더 돋보이도록 액자 여백을 줄여 목재부분을 감추고자 의도했는데 그때 지적은 일본 심사위원이 자국의 도벽을 예로들며 액자도 작품의 한 부분인데 소홀했다며 작품의 완성도 부족을 아쉬워하는 심사평을 기억한다.
결국 벽체에 걸린 도벽작품으로 공예재료를 다루는 완성도와 타재료 혼합문제을 떠나 환경디자인까지 포괄해야하는 용(用;장식적 효용도 포함)에 대한 공예적 특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도예작가(예술가)로서의 의식을 떠나 미의 공리성 내지는 객관성에 눈을 떠 도예의 표현과 그 개념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부졸업 후 1989년 공방운영 중 3500X14000의 대형 도벽을 의뢰받는 행운이 있었다. 공예학교에서 정통 공예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평상시 우리것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한국적이면서 고풍스러운 전통적 감각이 살아 숨쉬는 ‘전돌’과 같은 도자벽화를 제작 하고 싶었다. 그러나 외국서 빌려온 형식의 타일모자이크나 안료를 이용해 타일에 채색하는(회화) 미술벽화 경험이 전부인 나에게 첫 제작은 실패로 돌아왔고 도벽이 일반 벽화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결국 프로젝트 전체를 반복하는 재작업의 손실을 떠안고 작가의 오기로 완성은 했지만 조각에 능숙치 못해 부조작업이 힘들게 지연되었다. 그리고 도벽은 흙의 가소성과 도자물의 특질을 활용한 요업물인 탓에 점토위에 다양한 안료채색이나 조형의 작품성은 고사하고 현대 환경건축과 조형디자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 등 말이 아니었지만 그때 경험이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계기가 되어 지금의 안정된 작업과정과 환경도예에 전반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 제공 1, 한국통신공사 수원사옥, 명제:과거의 통신수단 -북, 봉화, 파발마, 연, 은하수, 무광안료 1250℃)

그리고 환경도예 운운하는.. 도자예술 이전에 도자공예를 먼저 익혀온 본인의 경우, 공예교육의 정통성을 얘기하자면 요업디자인과 같은 공예디자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물론 본인의 저서[도벽@환경도예]전문서 출간(2001년)전까지 환경도예의 개념조차 정립되지 못한 때를 말하고자 한다 -

다시말해 환경미술에 심취한 예술가적 도예가와 환경디자인에 기초한 요업디자인적 공예가로서 추구하는 가치체계의 분리 및 혼란속에서 작업에 있어 이를 균형있게 공존할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늘 따라다녔다.
현대 산업사회인 디지탈 경제시대에 공예문화의 미술성을 띤 작업전반의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는 디자인은 이제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한 수단을 넘어 인간의 삶과 문화를 형성하고 나아가 사회문화 자체라는 인식이 되고 있다. 장식적 디자인 차원에 머물렀던 산업혁명기 때와 달리 산업시대의 표준적 디자인과 정보시대의 맞춤형 디자인 등으로 글로벌시대인 지금은 문화산업의 원동력이 되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여기에 나는 디자이너와 공예가, 공예디자인이 21세기의 산업과 경제,문화 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공예가는 자신이 다루는 재료,종이,목재,점토,금속,염료 중 하나를 가지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예술을 하는 장인으로 남아지듯.. 디자이너 또한 산업기술과 예술을 합일(合一)하여 새로운 예술을 성취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산업 생산성을 바탕으로 기술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조화된 실체(實體)로서 인간의 생활에 기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정석을 아는 도자공예가들은 아직 일부이지만 건축도자나 환경도예, 요업디자인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언제나 순수예술가는 물론 건축가, 도시계획가, 공학자 등 여러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교감을 주고 받았고, 그들은 새로운 산업기술과 디자인, 신소재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공예예술의 새로운 변화를 시험하고 있다.
특히 이전까지 ‘총체예술’이었던 건축조형의 주제들은 건물의 미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외부로 그리고 도시환경을 포괄하는 삶의 디자인을 담은 오브제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미감 창조의 시도와 사물의 미적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날의 환경미술은 대도시의 지하철역과 호텔·쇼핑센터·백화점 등 대형 건축물의 트인 공간 벽면에 부조 조각을 활용한 도벽으로 환경예술을 창출하고 건축,인테리어,환경조경에도 반만년 유구한 도예문화를 바탕으로 한 환경도예(環境陶藝)는 한국 현대도예로서 그 입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

도예를 접한지 25년의 세월속에 두번의 개인전과 수많은 설치작품들이 있지만 나의 삶은 도예가로서의 활동과 공방운영의 사업가로서의 영역이 생활에 있어서 크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흙과 불을 다루는 장인(匠人)으로서 '도예'가 순수한 '도자예술'이기 이전에 '도자공예'이기를 바라는 나의 신념과 결과에 만족하며 계속되는 작업에 대한 탐구와 끝없는 열정으로 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최근 2004년 수주받은 광주지하철 도벽의 경우, 높이3m 폭1m의 돌기둥을 정교히 둘러싼 도벽은 전문 기업시스템이 아니면 불가능으로 특허기술과 공방시설, 도예가의 노하우가 시너지효과를 보인 것으로 미술,공예,요업,디자인,건축기법을 종합한 공간예술 첨단이 만들어낸 환경도예를 엿볼 수 있다.(사진 제공 2, 광주지하철 상무역, 명제:"무등산" 시유 1250℃)

여기에 국내 요업기술과 한국전통 와전(瓦塼)문화를 바탕으로 10여년의 연구 끝에 가공석재나 수입대리석을 대치하고 한국적 건축마감재로 활용할 점토로 만든 타일, 즉 부조로 조각된 문양을 가진 습식도판 토와(towa)를 개발하여 출시중이다. 이의 양산 특허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하지만 타일의 건식성형법과 달리 분청사기를 사각도판으로 만들어내 순수재료가 되는 점토의 물성(物性)이 가마소성에 의해 재질감이 그대로 살아난다는 평을 받고 있다.(사진 제공 3, 토와1005+1006+1007 모듈, 250mm X 250mm)

앞으로는 건축가의 작품공간에도 도예가와 다양한 협업을 통하여 환경디자인을 망라하는 창조적 환경도자조형물을 활용하여 예술을 민주화한다는 이념과 예술을 산업화한다는 방법을 통해서 주위의 환경과 연관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의 퍼블릭 아트(公共藝術)로 더욱 다양하게 수용되리라 기대해 본다.

- [월간 환경과 조경] 9월호 , 기고 , 2004년 8월 이재삼